인사말 1부 전태일의 어린시절 2부 전태일의 눈 다락방 봉제공장 3부 전태일의 실천 모범업체 4부 전태일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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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전태일의 꿈



전태일의 꿈
태일이와의 약속
전태일은 숨을 거두기 직전, 어머니에게 본인이 못다 한 일을 이루어주기를 부탁했습니다. 아들의 뜻을 이어받은 이소선 어머니는 장례를 거부하며 투쟁에 들어갔습니다. 유급휴일 실시, 정규 임금인상, 8시간 근무 시행, 정기적 건강검진, 여성 생리휴가, 다락방 철폐, 노조결성 지원 등 8개 조항을 정부 당국에 요구했습니다. 전태일의 분신을 통한 저항은 사회에 노동문제 심각성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정부 당국은 악화된 여론을 의식하여 요구조건을 받아들였고, 마침내 1970년 11월 27일 ‘청계피복노동조합’이 결성됐습니다.


전시사진
청계피복노조의 투쟁
1972년 10월 유신 이후 정부의 노조 탄압이 거세졌습니다. 그럼에도 노조가 노동시간 단축, 임금인상, 노동교실 운영 등의 성과를 내자 정부 당국은 물리적 해산을 시도했습니다. 또한 노조를 지원해 오던 활동가를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기고, 이에 항의한 이소선은 법정모독죄로 구속했습니다. 1977년 청계피복노조는 이소선의 석방 이후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의 노동삼권 보장을 요구하며 치열한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1981년 초 전두환 신군부는 노조를 강제 해산시켰습니다. 그러나 노조 합법화를 위해 청계피복 노동자와 이소선이 격렬히 투쟁한 결과, 1988년 드디어 노조 합법화를 이루어 냅니다.


전태일 평전
전태일 평전
저자인 조영래 변호사는 서울대생 내란 음모 사건과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에 연루되어 1974~1979년 6년간의 도피 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이 시기에 전태일의 일기장을 토대로 이소선 어머니와 친구들의 증언을 더 하여 전태일 평전을 집필합니다. 1977년 전태일 평전은 완성되었으나, 유신체제에서 출판되기 힘들 것이라고 판단, 1978년 일본에서 처음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이후 1983년 한국에서 출판되었지만, 군사 독재 정권이었기에 원고의 내용이 상당히 수정된 상태였습니다. 군사독재가 끝난 1991년 개정판이 나오고서야, 저자를 조영래로 밝히고 원래 원고 내용대로 출판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전태일 평전은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어 여러 나라의 노동운동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민주노동운동의 전개
민주노동운동의 전개
전태일의 분신은 지식인과 노동자 스스로가 과감히 연대 투쟁에 뛰어드는 결과를 일으켰습니다. 이후 수많은 노조가 서로 지원하고 연대하면서 민주노조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전두환 신군부는 사회정화 운동의 일환으로 노동계 정화 조치를 시행했습니다. 복수 노조 금지, 제3자 개입금지, 정치활동 금지 등 노동법 전면 개악을 단행했습니다. 1987년 전두환 정권의 6.29 선언 이후 노동자의 거대한 투쟁은 폭발했고, 이후 노동운동의 주체가 모든 임금노동자로 확장되는 지형 변화를 불러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