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재독 화가 송현숙, 한국 사회의 아픔을 공감하며 그린 작품 전태일기념관 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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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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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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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독 화가 송현숙, 한국 사회의 아픔을 공감하며 그린 작품 전태일기념관 기증 2024년 전태일기념관은 개관 5주년을 맞이하여 의미 있는 작품을 기증받았다. 기증 작품 <통곡하는 어머니, 이소선>은 머나먼 이국의 땅에서도 한국의 역사성과 사회의식의 맥을 이어 나간 재독 화가, 송현숙 작가(1952~)의 초기 작품이다. 한국 정부의 해외 인력수출 사업의 일환으로 1972년 독일에 보조 간호사로 파견되었던 송 작가는 보조 간호사 생활을 마치고 예술가의 꿈을 키우며 함부르크 조형 예술대학에 입학하여 본격적으로 미술을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작품 속 사회상】 송 작가가 대학에 입학한 1976년 독일은 부조리하고 억압적 사회에 대항한 68세대의 열기가 오롯이 남아 있었던 시기였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사회와 역사에 대한 의식이 싹트기 시작한 송 작가는 전태일 열사의 분신항거 소식을 전해 듣고, 작품을 제작하였다고 한다. 대형 캔버스 속 울부짖는 거뭇한 여인의 얼굴에는 이러한 송 작가의 생각이 담겨있는 듯하다. 흰 주검을 안고 있는 여인은 부조리한 세상에 항거한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이다. 여인의 미간 사이 짙은 주름과 굳게 다문 입술을 어우르는 거친 붓질에는 아들을 잃은 슬픔과 더불어 아들이 못다 한 뜻을 이어 나가고자 하는 강한 결의마저 엿보인다. “한국에서 출국하기 전의 사회 현실에 대한 기억을 돌이켜 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 한국의 산업 발전 뒤에는 그들의 피땀어린 노동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동대문 시장에서 그 어린 소녀들이 ‘시다’로 온갖 허드레 일을 한 후 미싱사가 된다는 것, 그녀들이 얼마나 취약한 공간에서 노동을 해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함께 어린시절을 보냈던 동네 소꿉놀이 친구 두 명을 통해서 생생하게 경험을 했었습니다.” 과거를 회상하며, 송 작가는 당시 한국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언급했다. 협소한 공장은 위아래로 미싱이 가득 들어차 있었으며, 좁은 공간 사이사이에서 노동자는 오랜 시간 일을 하였다. 한국의 경제 산업은 빠르게 발전했지만, 최소의 자본으로 최대의 효율을 끌어내는 과정에서 노동자에 대한 핍박이 존재한 것이다. 【시대의 흐름과 작품 양상의 변화】 1978년 프랑크푸르트에 ‘재독한국여성모임’이 창립되었다. 모임의 일원으로 한국 사회의 다양한 소식을 교환하며 비판적 의식을 키워온 송 작가에게 한국의 이러한 실태는 더욱 마음에 와닿았던 듯하다. 송 작가의 작품 활동 초기의 양상을 보면 사회와 역사에 대한 의식을 녹여낸 역사적 의미가 있는 작품이 주를 이룬다. 현재 평화박물관에 재일교포 서경식 부부가 기증한 <인천 동일방직 노동자들에 대한 똥물사건>은 동일방직 어용노조에 대항하는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똥물 투척 사건을 그려낸 작품이다. 이외에도 5.18 광주항쟁을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1980. 5.18 광주학살>, <5.18 임산부 광주학살> 등이 있다. 송 작가의 작품 초기와 현재는 그 양상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한국의 사회상을 토대로 그림을 그린 초기와 달리, 지금은 붓과 선을 통하여 한국의 미학을 녹여낸다. 템페라 기법과 귀얄 붓을 가지고 내지르는 획 하나하나에는 한국의 질감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듯하다. 역사적 사건을 직관적으로 묘사하는 방법에서, 보다 정제된 형상학적 표현 방법으로 변화된 송 작가의 작품 양상 변천 과정에는 고향을 향한 그리운 심정만은 변함없이 중심에 있다. 【작품의 기증과정】 국외 소재 작품인 <통곡하는 어머니, 이소선>이 기념관에 오기까지에는 특별한 인연이 함께 했다. 기념관과 연이 닿을 수 있도록 노력해 주신 베를린 자유대학 한국학과 최현덕 교수님과 독일에서 한국까지 대형작품을 손수 운송해 주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이자 전태일기념관 운영위원인 이선태 차장님에게 감사드리는 바이다. 가로 1.5m 세로 1.3m에 이르는 대형 작품을 국내로 운송하기 위하여 캔버스 틀에서 그림 천을 분리하는 작업을 거쳤다. 작품의 손상을 최소한으로 하기 위해 큰 지통에 두껍게 하여 말아 넣었다. 지통의 외곽에는 끈을 달아 운반의 편리성을 더했다. 이후, 공항의 통관을 거쳐 15시간 비행 끝에 작품이 기념관으로 오게 되었다. 해당 작품은 액자 표구 처리 이후에 기념관 내 전시를 통해 공개할 예정이다. 작품을 통해 송 작가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전태일 열사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일은 우리 사회를 앞으로도 계속 보다 정의로운 사회로 만들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일 것입니다” 1970년 11월 13일은 평화시장의 미싱사, 전태일이 분신한 날이다. 그가 작은 화염이 되면서까지 세상에 알리고자 했던 말은 단순하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현대 선진화된 한국 경제의 밑바탕에는 노동자의 희생이 존재한다. 사람이 기계가 아니라는 말을 세상에 외쳐야만 했던 그 시절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해당 작품을 통해 과거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기를 바란다. ■ 전태일기념관 정 유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