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열사] 2024. 3

  • 관리자
  • 202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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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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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기념관 캠페인 프로젝트 전시 <이달의 열사> 전태일기념관의 <이달의 열사>는 한국 현대사 내 노동열사 및 민주열사를 재조명하고, 열사들의 활약과 헌신을 시민들에게 알리는 캠페인 프로젝트 전시입니다. 자료 협조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민족민주열사, 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 2024년 3월의 열사, 최 옥 란 1966. 출생. 뇌병변장애 입음 1988. 장애문제연구회 ‘울림터’ 창립회원 1989. ‘장애인고용촉진법 제정과 장애인복지법 개정’ 공화당사 단식 투쟁 2001. ‘장애인 이동권 쟁취를 위한 연대회의’ 활동 2001. 12. 생존권 쟁취와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한 명동성당 농성단 참가 2002. 3. 26 운명 최옥란 열사의 삶은 이 땅에서 장애인으로, 빈민으로, 여성으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당시 1인당 월 소득이 33만 원이 넘으면 수급권자에서 탈락해 의료보호를 받을 수 없었다. 뇌병변장애 치료 때문에 의료지원이 꼭 필요한 상황이라 열사는 노점조차 하지 못했다. “현행 최저생계비에 기초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헌법상의 행복추구권과 평등권, 그리고 최저생계 보장이라는 법의 취지에 위배된다.”라며 헌법소원을 제출했다. 그러던 중 이혼한 뒤 ‘아들에 대한 양육 능력을 인정받으려면 통장에 어느 정도의 돈을 넣어두어야 한다’는 변호사의 말에 주변의 도움으로 7백만 원가량을 모았으나 오히려 일정한 소득이 있는 것으로 간주해 수급권에서도 탈락했다. 장애인고용촉진법 제정 단식 투쟁, 장애인이동권연대 선로점거 투쟁 등 장애인 운동에도 앞장섰던 열사는 장애인으로, 여성으로, 수급권자로 그리고 실업자로 살며 어떻게 호소해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을 괴로워하다 극약을 마시고 병원에 입원 중 운명했다. 최옥란 열사의 삶은 이 땅에서 장애인으로, 빈민으로, 여성으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당시 1인당 월 소득이 33만 원이 넘으면 수급권자에서 탈락해 의료보호를 받을 수 없었다. 뇌병변장애 치료 때문에 의료지원이 꼭 필요한 상황이라 열사는 노점조차 하지 못했다. “현행 최저생계비에 기초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헌법상의 행복추구권과 평등권, 그리고 최저생계 보장이라는 법의 취지에 위배된다.”라며 헌법소원을 제출했다. 그러던 중 이혼한 뒤 ‘아들에 대한 양육 능력을 인정받으려면 통장에 어느 정도의 돈을 넣어두어야 한다’는 변호사의 말에 주변의 도움으로 7백만 원가량을 모았으나 오히려 일정한 소득이 있는 것으로 간주해 수급권에서도 탈락했다. 장애인고용촉진법 제정 단식 투쟁, 장애인이동권연대 선로점거 투쟁 등 장애인 운동에도 앞장섰던 열사는 장애인으로, 여성으로, 수급권자로 그리고 실업자로 살며 어떻게 호소해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을 괴로워하다 극약을 마시고 병원에 입원 중 운명했다. 내용 중 작품 정보 벽 앞의 웃음, 2018-2021, 162×130cm, 캔버스에 아크릴 Smile in Front of the Wall, 2018-2021, 162×130cm, acrylic on canvas 2002년 신문에서 손뼉을 치며 웃는 그녀의 모습을 처음 만났다. 하늘을 향해 온몸으로 웃는 모습. 그 불편함과 통쾌함이 나를 정지시켰다. 사진을 오려 놓고 5년이 흐른 후 2007년 입김의 ‘사라지는 여자들’ 인터넷 추모 웹사이트에 최옥란을 올렸다. 초상은 2018년 이한열기념관 특별기획전 ‘보고 싶은 얼굴’전에 그렸다. 그림이 완성된 후 납골당에서 아들의 사진과 메모를 발견하고 아들의 글씨를 넣어 다시 그렸다. 그 해 내가 받은 가장 큰 위로였다. -보고 싶은 어머니, 안고 싶은 어머니, 그리운 어머니, 너무 늦어 죄송합니다. ‘15.06.01 김준호 정정엽 작가 작품 노트 中 문 의 : 02-318-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