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열사] 2023. 9

  • 관리자
  • 2023.08.30
  • 조회수 565
언론보도

전태일기념관 캠페인 프로젝트 전시 <이달의 열사> 전태일기념관의 <이달의 열사>는 한국 현대사 내 노동열사 및 민주열사를 재조명하고, 열사들의 활약과 헌신을 시민들에게 알리는 캠페인 프로젝트 전시입니다. 자료 협조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 2023년 9월의 열사, 박 영 진 1960.11.23. 충남 부여 출생 1976. 가난으로 배문중학교 수료 후 신문팔이, 구두닦이 등 1982. ‘한얼야학’에서 사회에 눈을 뜸 1984.7. ㈜동일제강 입사 후 노동운동가로 활동 1985.9.18. ㈜신흥정밀 입사 후 부당 노동에 대항하며, 동료들에게 노동법과 노동자 의식 가르침 1986.3.17. 임금투쟁 및 노동환경 개선 파업농성 중 분신하여 운명 박영진 열사는 어린 시절 중학교를 중퇴할 정도로 어렵게 살아왔다. 그러나 공부에 대한 열망이 커 검정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시작한 야학에서 노동 사회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후 시흥에 있는 동도전자에 다니면서 노동자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단결된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동일제강에 입사해 민주노조 건설에 핵심적 역할을 해낸 박영진 열사는 신흥정밀에 입사하여 온갖 부당노동행위와 임금착취를 자행하는 사측에 대항하여 싸워나갔다. 1986년, 신흥정밀 임금인상투쟁에 공권력이 투입됐다. 그 과정에서 박영진은 경찰과 회사 측의 폭력적인 탄압에 맞서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살인적인 부당노동행위 철회하라, 노동3권 보장하라”며 분신했다. 박영진 열사는 병원에서 “전태일 선배가 못다 한 일을 내가 하겠다. 1천만 노동자의 권리를 찾겠다. 끝까지 투쟁해야 한다.”라는 유언을 남기며 운명했다. 이소선 어머니의 주선으로 평소 가장 존경했던 전태일 열사와 나란히 안장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경찰의 방해로 마지막 상여가 놓였던 자리인 전태일 열사 묘역 길목에 안장되었다. 문 의 : 02-318-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