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품] 전태일기념관 기획전 <작은 소망이 이루어질 때> 전시 소장품 소개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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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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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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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소망이 이루어질 때_청계피복노동자의 아름다운 투쟁이야기>展 자료를 소개합니다. 견습공(시다)의 월급은 사용주가!! 1976년 견습공 임금 사용주 직불제 확정 1970년대 초, 치솟는 물가 속에서도 시장상가 노동자의 임금은 매우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 열악한 노동환경 중에서도 가장 시급한 것은 임금 문제였다. 1975년 5월 청계피복노조의 견습공 임금 조사 통계 보고서를 보면, 하루 평균 12시간씩 한 달 꼬박 일해도 8,000원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봉제산업의 가장 아래 단계인 견습공의 임금 인상은 청계피복노조가 급선무로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청계피복노조는 1974년 1월 31일 임금제도 개선 대책위원회를 조직하고, 최우선으로 견습공 임금인상에 대한 교섭 및 정책을 펼쳤다. 품목이나 회사에 따라 견습공 임금을 사용주가 아닌 미싱사가 주는 경우가 있었다. 특히 일을 쉬는 비철에도 미싱사가 견습공의 임금을 챙겨야 하는 것은 큰 부담이었다. 청계피복노조의 임금 제도 개선위원회 점퍼 부문 대책위원 임금자, 정선희의 주도로, 1976년 3월 6일 견습공 임금 직불제 요구 투쟁이 시작됐다. “미싱사의 공임을 올리기보다 견습공 임금을 사장이 주고, 우리가 공임을 1년 늦게 올려받으면 좋겠다. 일을 쉴 때 마음 편히 쉬고 견습공도 편안하게 일하게 해주는 게 타당하다는 마음으로 투쟁에 참여했죠.” - 점퍼공장 미싱사 견습공 임금 사용주 직불제 투쟁 참여자 정선희 - 보름 동안 동화상가, 통일상가, 을지상가 등의 25개 점퍼 공장이 투쟁에 참여했다. 사업장에 따라 노동자 전원이 파업하거나 일부가 파업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일부 공장에서 주동자들을 해고하자, 청계피복노조원과 점퍼공장 노동자들은 76년 3월 36일 평화시장 앞에서 가두시위를 준비했다. 가두시위 계획 메모에는 일시와 장소, 시위 방법(슬로건과 성명서 등), 업무 분장이 매우 구체적으로 기재되어 있다. 청계피복노조는 이 가두시위에서 ‘노동자 권리 선언’이라는 성명서를 통해 시장상가 노동자의 요구를 표명하고자 했다. 성명서의 핵심은 견습공 직불제와 미싱사 기본급 보장, 임금 인상, 노동 환경 개선 등이었다. 결국 견습공 직불제 투쟁 가두시위는 사전 발각되어 무산됐지만, 76년 3월 26일 사용주, 노동청 소장, 근로감독관과 청계피복노조 지부장의 회의에서 견습공 사용주 직불제 결정을 끌어냈다. 이날 회의에서 사용주가 점퍼공장 견습공의 임금을 지급하고, 추후 노사협의회에서 단가를 결정하기로 했다. 시장상가 노동자들의 염원이던 견습공 임금을 사용주가 지급하는 것이 드디어 확정되어, 청계피복노조의 노력이 결실을 보게 되었다. 청계노조 임금인상 활동의 성과인 1976년 견습공 직불제 관련 문서는 현재 <작은 소망이 이루어질 때_청계피복노동자의 아름다운 투쟁이야기>展에서 실물 자료로 확인할 수 있다. ■ 전태일기념관 김 혜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