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열사] 2023.6
- 관리자
- 202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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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기념관 캠페인 프로젝트 전시 <이달의 열사> 전태일기념관의 <이달의 열사>는 한국 현대사 내 노동열사 및 민주열사를 재조명하고, 열사들의 활약과 헌신을 시민들에게 알리는 캠페인 프로젝트 전시입니다. 자료 협조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 2023년 7월의 열사, 신 호 수 1963. 8 : 전라남도 출생 1980. 9 : 부천시 송내동 공장에서 노동운동 1986. 6 : 인천 연안가스 상사에서 업무 중 서울 서부 경찰서로 강제 연행 후 실종, 8일 만에 전남 여수 동굴에서 죽은 채 발견 2002. 9 :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결과 '진실규명 불능' 판단 2009. 11 :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국가 사과, 구제 조치' 결정 1986년 신호수는 인천 연안가스 배달노동자로 일하던 중 6월 11일 서울시 대공수사과 형사에게 강제 연행된 뒤 행방불명 되었다가 8일 만에 고향 집 인근 전남 여천군 대미산 중턱에서 사체로 발견되었다. 신호수가 강제 연행될 무렵 1986년 5월의 인천은 ‘인천5・3민주항쟁’으로 학생・노동자들의 민주화 운동이 활발한 시기였다. 당시 신호수는 불온 전단지를 소지하고 있다는 이유로 불순분자와 연계 활동한 것으로 파악되어 ‘국가보안법위반’혐의로 불법 연행되어 고문치사로 사망에 이르렀지만 자살로 종결됐다. 아들의 죽음을 규명하기 위해 신호수 아버지(신정학)는 갖은 노력을 다했다. 변론을 거부하여 변호사조차 구할 수 없던 아버지는 전태일의 어머니이자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초대회장인 이소선을 만났고, 이소선과 함께 의문사 진상규명 투쟁의 선두에서 활동했다. 1988년 10월 시작된 ‘의문사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촉구 농성을 시작으로 98년 국회 앞에서 의문사 제정법을 촉구하며 422일간 농성장을 지켰다. 1999년 ‘의문사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제정에 따라 다음 해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출범하여 백골화된 신호수의 유골을 다시 조사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2006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진실 규명의 기회를 다시 얻게 되었고, 2009년에는 공권력의 부당한 행사와 불법적인 강압 수사가 신호수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것으로 판명했다. 신호수 아버지와 유가협의 노력으로 죽음에 대한 진실은 규명되었지만 민주화 과정에서 국가 공권력에 희생당한 수많은 열사들의 죽음이 의문사로 남겨져 있다. 민주주의 완성을 위해 우리는 민주주의 과정을 올바르게 기억하고 추모하며, 민주주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며, ‘민주유공자법’제정을 촉구하는 투쟁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