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남을 위해 내어주는, 전태일의 유쾌함을 기억하자

  • 관리자
  • 2019.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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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80년대 한국 경제의 고도 성장기. 누군가는 지도자 덕이라고도 하고, 다른 누군가는 회장님 덕이라고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산업역군들 덕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걸 가능케 했던 이는 ‘여공(女工)’이었다. 밖으로 장시간 저임금 노동을 버텨내면서 안으로 살림을 살아낸 이들이 아니었다면 한국 고도성장의 신화란 불가능했다. 1970년 11월 13일 동대문 평화시장 재단사였던 전태일이 제 한 몸을 불사르며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친 것도, 따지고 보면 봉제공장의 여공들을 위해서였다. 여공들이 제 손을 바늘로 찔러가며 졸음을 쫓아내면서 하루 14시간씩 일하고 손에 쥐었던 일당은 겨우 50원. 당시 커피 한 잔 값에 불과했다. 보조에 불과하다는, ‘시다’라는 멸칭까지 감수해야 했다. 전태일은 그런 현실을 참을 수 없었다. 원문보기: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121709210915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