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일보] [시론] “이번 역은 종로3가, 종로3가 전태일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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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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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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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이번 역은 종로3가, 종로3가 전태일역입니다” “1970년 11월13일, 평화시장 중앙에 광장이 있었다. 그 광장은 오후 1시부터 2시까지 공장에서 일하는 종업원과 사용주, 공장장 수천 명이 모여 직업 알선 등이 이뤄지던 인력시장이다. 그곳에서 전태일이 주동하여 여러 사람이 데모하기로 했다. 하지만 경찰 경비가 삼엄해지면서 각자 흩어졌는데 국민은행 쪽 계단에 불덩이가 튀어나오면서 조그마한 형체가 광장 한복판에 섰다가 쓰러졌다. 쓰러졌다가 다시 불뚝 일어나며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친구들아, 나의 죽음을 헛되이 말라'고 소리쳤다. 입술은 뒤집혀 졌고, 머리카락은 나일론 천 타듯이 부글거렸다.” 최종인 전태일재단 이사의 증언이다. 최 이사는 분신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고, 입고 있던 점퍼를 벗어 덮어줬던 전태일의 친구다. 전태일은 끼 많고 멋 부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평화시장 근로기준법 위반 실태를 노동청에 진정하고, 언론이 보도했음에도 변하지 않는 노동환경에 전태일은 '결행'을 암시하는 얘기를 했다. 근로기준법 화형식 시위를 시도하다 실패하자 끝내 법전과 함께 자기 몸을 불살랐다. 요지부동이던 평화시장에도 변화가 일었다. 분신 항거 14일 후 전태일 친구들 중심으로 청계피복노조가 탄생했다. 그가 그토록 도움받길 원했던 대학생 친구들도 결합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조영래, 장기표 등이다. 조영래가 전태일 일대기를 출간하자 그는 다시 살아났다.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이 그것이다. 서슬 퍼런 군부독재 시절 저자의 이름을 숨길 수밖에 없었고 전태일기념관건립위원회라는 가칭을 사용했다. 고용노동부가 약칭을 노동부로 부르기로 했다. 이왕 바꾼 거 법률상 용어인 근로를 노동으로 전면 개정해야 한다. 근로자는 노동자로, 근로기준법은 노동기준법 또는 노동기본법으로 바꿔야 한다. 근로는 일제 강점기부터 썼던 말로 사전적 의미는 부지런히 일한다는 뜻이다.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노동은 인간이 한다. 기계가 동물이 인공지능이 하는 일을 노동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노동은 인간에게만 귀속되는 고유한 행위다. 우리는 노동으로 소득을 얻고 생계를 유지한다. 돈을 벌려고 인생 대부분을 노동시간에 얽매인다. 인류에게 노동은 숙명이다. 평범함 속에 깃든 비범함, 인간 존엄에 대한 불멸의 가치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전태일의 외침에 담겨있다. 그을린 주검을 보며 세상의 모순에 대적한 작은 인간의 위대함이, 이를 홀로 이룰 수 없다는 절박함이 단결과 연대를 불러왔다. 한국 사회는 그에게 빚을 졌다. 전태일이 죽음으로 부르짖은 근로기준법 준수는 사후 55년이 지나도 진척되지 못했다. 여전히 5인 미만 사업장은 근로기준법 적용의 예외다. 인간적인 노동체제는 모든 인간이 차별 없이 자유와 평등과 존엄과 안정 속에서 자신의 물질적 진보와 정신적 발전을 추구할 수 있는 조건을 실현하는 것이다. 12·3 내란 사태를 제압하며 진척된 정치적 민주주의가 일터에서의 민주주의로, 경제 민주주의로, 정의로운 산업 전환으로 질적 도약을 하는 게 노동 존중 사회 아니겠는가. 때마침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11월13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할 수 있을 것이라는 구상을 밝혔다. 종로3가역을 전태일역으로 변경하자고도 말했다. 전태일 친구들과 유족들의 숙원이던 전태일기념관이 종로3가 청계천변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국가기념일 지정은 전태일을 기억하는 사회적 장치다. 전태일이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고, 대통령이 전태일과 이소선 여사가 묻힌 모란공원 묘역에 참배하는 그런 날에 지하철 1·3·5호선에서는 이런 안내방송이 울릴 것이다. “이번 역은 종로3가, 종로3가 전태일역입니다.” /부성현 전 매일노동뉴스 대표 출처 : 인천일보(https://www.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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